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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 『세월』 – 아니에르노가 써낸 삶과 기억의 기록

by 필사의 하루 2025. 5. 19.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아니에르노의 『세월』을 펼쳤습니다. 마치 오래된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이 책은 작가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도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집단적 기억을 건드립니다.
『세월(Les Années)』은 프랑스 작가 아니에르노가 1941년부터 2006년까지, 약 60여 년에 걸친 삶과 시대를 한 권에 담아낸 기록입니다. 이 책이 독특한 이유는 바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이 바로 아니에르노를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끌었죠.

“그녀는…”으로 시작하는 문장, 그 안에 담긴 세대의 얼굴들

『세월』은 일반적인 자서전과 다릅니다. 작가는 1인칭 “나”가 아닌, 3인칭 “그녀”로 자신을 서술합니다. 그 결과 독자는 아니에르노라는 특정 인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시절을 살았던 모든 여성, 모든 인간의 삶을 투영하게 됩니다.

  • 냉장고와 세탁기가 처음 보급되던 시대,
  • 여성의 역할이 '집 안'에만 고정되던 시절,
  • 68혁명, 낙태 합법화, 소비 사회의 등장, 인터넷까지…

그녀는 아주 사소한 일상과 풍경, 광고 문구, 대중문화 속 유행어, TV 속 이미지들을 통해 한 세기의 감정과 풍경을 기록합니다.
무심한 듯한 문장 속에서도 우리는 ‘사회 변화 속에 놓인 개인의 위치’를 선명히 목격하게 됩니다. 이 책은 한 여성이 겪은 삶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겪은 세월의 보편성을 품고 있습니다.

감정을 절제한 문체, 오히려 더 강한 울림

아니에르노의 문장은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사건을 극적으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담백한 서술이 독자에게 더 깊이 스며듭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 사회적 차별, 사랑의 상처 같은 극적인 사건을 거의 '기록하듯' 건조하게 적습니다. 하지만 그 말투와 형식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느낍니다. 감정이 배제된 문장이 감정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설, 그게 아니에르노 문체의 힘입니다.

『세월』은 ‘나이 듦’에 대해 말하면서도, ‘잊힌 시대’에 대해 기록합니다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과거를 잊거나 미화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니에르노는 그런 태도를 경계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과 변화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기록합니다.
『세월』을 읽다 보면, 이 책은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책이 아니라 기억의 윤리를 지키는 문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책이 필요한 이유

지금은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쉽게 퍼뜨릴 수 있는 시대입니다. SNS와 블로그, 영상 플랫폼은 자기표현의 도구가 되었죠. 하지만 그만큼 깊이 있는 기록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세월』은 단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의 공기와 생각, 감정과 구조, 욕망과 소외를 함께 담아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전적 글쓰기의 교과서이자, 기억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세월』을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 자전적 에세이 또는 회고록에 관심 있는 사람
  • 여성 서사와 시대적 흐름에 민감한 독자
  • 감정의 깊이를 담백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은 글쓰기 학습자
  • ‘삶’과 ‘글’을 연결짓고 싶은 사람

읽고 난 뒤, 내 안의 ‘세월’을 떠올리다

책장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 삶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겪은 사회적 변화, 어떤 문화를 통과해왔는지, 어떤 감정을 말하지 않고 지나쳤는지.
『세월』은 단지 읽는 책이 아니라 내 안의 기억을 불러오는 촉매제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 ‘나’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재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