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아침, 출근길은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차창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 흐릿하게 보이는 건물들의 윤곽,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며 시작된 오늘 하루. 바쁜 일상이 시작되기 전, 저는 잠시 숨을 고르듯 나만의 루틴을 따릅니다. 바로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필사 시간입니다.
하루를 준비하는 첫 단계 – 성경 필사

아침 일과의 첫 시작은 성경 필사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짧은 시간이 제게는 큰 의미를 줍니다. 최근에는 욥기를 마무리하고 시편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시편은 마치 한 줄 한 줄이 노래 같고 기도 같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에 참 좋습니다. 시편을 필사하는 동안 문장 속에서 나의 감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 구절이 하루 종일 마음을 맴돌기도 하죠.
이 시간이 단순한 종교적 실천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이 필사가 나를 중심으로 다시 붙들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랄까요.
두 번째 루틴 – ‘토지’ 필사, 문장을 따라가는 사색의 시간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필사는 바로 박경리 작가의 『토지』 필사입니다. 요즘은 8권을 읽고 쓰는 중인데, 필사하기전 잠시 읽고 연필이 머무는 곳에 밑줄을 긋습니다. 그리고 토지 필사노트를 펼쳐서 적어요. 하루 한두 쪽씩만이라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빠르게 진도를 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목적입니다.
박경리 작가의 문장들은 생명력이 강해서, 필사하는 내내 마치 당시의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날은 필사 중 문득 멈춰 서서,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또 어떤 날은 문장 하나에 한참을 머물기도 합니다. 이런 사유의 시간이 하루 전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오늘 역시 박경리가 박경리했다, 하는 생각이 가득입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나만의 루틴 – 커피 한 잔

지금까지 블로그에 필사 루틴에 대해 자주 소개해왔지만, 한 가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필사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필사를 시작하기 전 직접 커피를 내립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말에는 핸드드립으로, 평상시에는 빠르게 내릴 수 있는 에스프레소로 합니다. 따뜻한 물을 천천히 부으며 커피가 추출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그 고요함은 마치 필사의 전주곡처럼 느껴집니다. 빠트릴 수 없는 순서입니다.
커피가 풍기는 향은 마음을 정돈시켜주고, 따뜻한 잔을 손에 쥐는 감촉은 하루를 준비하는 의식처럼 다가옵니다. 이 작은 루틴 덕분에 필사 시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의식의 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 글로 생각을 풀어내는 시간
성경을 필사하고, 『토지』를 필사하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제 마음은 꽤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시간의 끝에는 늘 글쓰기가 따릅니다. 지금 이 순간처럼 말이죠. 필사로 채워진 문장들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 그 위에 오늘의 생각, 느낌, 그리고 나의 하루를 덧붙여 블로그에 기록합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느끼는 건, 필사가 단순히 좋은 문장을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내 안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드는 준비 과정이기도 하죠. 글쓰기와 필사는 서로를 보완해주며, 하루를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하루를 천천히 여는 힘, 나만의 아침 루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아침 시간이 늘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진 않으신가요? 잠에서 겨우 깨어 허겁지겁 옷을 입고,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그런 아침 대신, 단 30분만이라도 조용한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핵심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실천했다는것이죠.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 속에서도 ‘느림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보는 것. 필사와 커피, 그리고 글쓰기는 그 느림의 미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생각을 붙잡고, 하루를 내 방향대로 설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저의 루틴은 거창하지 않아요. 성경 한 구절을 따라 쓰고, 『토지』의 한 문단을 베껴 쓰고, 커피 한 잔을 내리고, 글 한 편을 씁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위들이 모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하루를 의미 있게 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필사를 좋아하거나, 나만의 아침 루틴을 고민 중이라면 오늘부터 커피 한 잔과 함께 천천히 써보는 하루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하는 모든 루틴을 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만 해보세요. 느리지만 단단한 하루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