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필사로 시작한 주말 아침.
몽당이가 되어가는 연필을 조심스레 쥐었다가 내려놓고, 새 연필 하나를 꺼내 깎았다. 자동 연필깎이를 옆에 두고도 나는 여전히 손으로 연필을 깎는 편이다. 사각사각, 나무 깎이는 소리가 방 안을 가볍게 울릴 때면, 그게 꼭 마음속 잡음들도 함께 정리되는 소리 같아서다.
어젯밤엔 샤워도 잊고 책상 앞에 앉아 마야 안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정신없이 읽었다. 그 문장들의 힘은 새벽 2시 30분까지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겨우 책장을 덮고 샤워를 마친 후 잠들었지만, 주말 아침의 고요함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오늘은 조금 너그러이, 6시 30분에 기상했다.
보이차 한 잔을 따뜻하게 내려 책상에 앉아, 이유미 작가의 『자기만의 책방』을 펼쳤다. 이 책은 '읽는 것'과 '사는 것'의 경계에서, 우리가 진짜로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조용히 묻는다. 책방을 운영했던 작가가 말하는 ‘자기만의 책방’은 단지 책을 파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생각,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정서적 공간이다.
그 책장을 넘기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 책들은 절대 되팔 수가 없겠어. 좋은 핑계야.”
나는 책을 노트처럼 읽는 사람이다. 책에 줄을 긋고, 여백에 생각을 쓰고, 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적는다. 첫 문장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의 결, 어떤 인용문을 봤을 때 툭 하고 튀어나온 내 속마음. 노트에 따로 정리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릴 것 같아 두리번거리다 놓친 적도 많다. 그래서 책 속 여백은 내 머릿속 지도처럼 소중하다. 내 책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기록한 또 하나의 일기장이다.
『자기만의 책방』 속 이야기들은 내 독서 습관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책방은, 나의 마음을 놓아두는 장소였다.”
읽고 쓰는 것이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듯, 책을 두고 내 손으로 지운 흔적들, 줄 그은 문장들, 지우개 가루까지… 모두 내가 이 시간을 살아낸 기록이 된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 허기가 느껴지고, 문득 책상 위를 보니 지우개 가루가 소복히 쌓여 있다. 어느새 책방처럼 변해버린 내 책상. 고요한 주말 아침의 풍경이다.
☕️ 이번 주말엔 미친 듯이 읽어야 하고,
미친 듯이 써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머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집중이 쉽지 않았다. 결국은 사무실로 향할 수밖에 없다. 나만의 리듬, 나만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을 위해. 내 취향으로 채운 책들, 손에 익은 펜, 입맛에 맞는 차 한 잔이 있는 그 공간에서야 비로소 나답게 읽고, 쓸 수 있다.
『자기만의 책방』을 읽으며 더 확실해졌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공간이 있다.
조용하고,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
책을 통해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내 글로 남기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그 자리.
그것이 꼭 책방일 필요는 없다.
작은 책상일 수도 있고, 창가의 자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곳은 분명 ‘자기만의 책방’이다.
오늘도 나는 그 공간으로 간다.
책과 함께, 내 시간을 조용히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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