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훈 『자전거 여행』 등대 편 – 색으로 말하는 등대의 의미

by 필사의 하루 2025. 6. 11.

 

 

오늘 아침 문장 덕질: 김훈 『자전거 여행』과 등대의 신호

“등대는 저마다의 고유한 신호를 쏘아대며 등대 자신의 위치를 선박에게 가르쳐준다.
여기는 선미도, 여기는 속초, 여기는 울릉도, 여기는 오륙도라고 등대들은 밤새도록 깜박이며 외친다.
그래서 이 세계의 등대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신호체계를 갖는다.
항해사는 등대의 위치와 이름을 알아야 비로소 바다 위에 뜬 저 자신의 위치를 알 수가 있다.
내 밖에 존재하는 타자의 위치와 그 타자의 이름을 알아야만 나는 나를 확인할 수가 있다.
모든 등대는 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깜박인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제가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 등대편의 한 문장입니다.
등대가 자기 위치를 외치듯 깜박이고, 그 깜박임은 단지 ‘빛’이 아닌 ‘말’이라는 사실, 오늘 아침 나침반이 되어주는 문장 같습니다.

 『자전거 여행』 속 등대 이야기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말 그대로 인생의 여행서입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만나는 길과 풍경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그 여정을 통해 인생을, 사람을, 존재를 이야기하는 글이지요.
그중에서도 ‘등대’를 다룬 장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 있는 문장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에요. 
저마다의 신호를 가진 등대, 그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닌 ‘위치 정보’이자 ‘존재의 외침’이라는 말을 하고 있어요.
선박은 그 등대의 신호를 보고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결국 나는 '타자'의 위치와 이름을 알아야 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너무나도 묵직하고도 섬세한 통찰입니다.

 

 등대 색깔의 숨은 뜻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 문득 등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등대의 색에도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 🔴 빨간색 등대: 부두가 왼쪽에 있다는 뜻
  • 흰색 등대: 부두가 오른쪽에 있다는 뜻
  • 🟡 노란색 등대: 암초나 군사시설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 🟢 녹색 등대: 보이지 않는 암초가 있으니 절대 접근 금지

그제서야 생각나는게 종종 바다근처로 여행을 갔을 때 바다쪽에서 종종 들리던 시끄럽던 사이렌 소리, 사실은 ‘소형 선박’을 위한 위치 신호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소리의 길이와 간격에 따라 방향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요.
예전엔 그냥 “바다가 막히는것도 아니고 왜 저렇게 경적을 울리나” 했었는데
이제는 그 사이렌이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신호임을 알기에, 잠시 멈춰 무슨말을 하고 싶은건지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등대이자 항해사

등대는 외롭고 조용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고요 속에서 끊임없이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존재였습니다.
한밤중 어둠 속에서, 거친 풍랑 속에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의 방향을 지켜주기 위해
끊임없이 깜박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도 살아가며 등대가 되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도록 따뜻한 빛을 건네는 존재.
혹은 누군가의 등대를 바라보며,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 항해사로서의 삶.
 

항구가 가까워질수록 바다 위에는 더 많은 신호들이 나타난다.(...)
항해사는 이 모든 신호들을 연결시켜가면서 항구에 닿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신호가 가장 아름답다.

신호는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자의 슬픈 울음과도 같다.
그 신호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의 상대성을 긍정할 때,
선박은 대양을 건너가고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고
자전거는 산맥을 넘어온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오늘도 우리는 등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등대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겐 등대처럼 묵묵히 빛을 내는 존재로,
또 누군가에겐 항해사처럼 의미 있는 방향을 찾는 하루로,
귀한 쓰임되시는 하루 되세요!
 
한주의 중간인 수요일 아침, 저도 이제 출항합니다!


 

 “김훈 『자전거 여행』 – 느림과 사유의 아름다움”

 

“김훈  『자전거 여행』  – 느림과 사유의 아름다움”

점심을 마치고 산책겸 돌아오는 길, 유난히도 선명한 하늘과 바람 덕분에 문득 떠오른 책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입니다. 단지 ‘여행 에세이’라고 부르기엔 이 책은

notedays.co.kr

김훈 『연필로 쓰기』 – 문장을 짓는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김훈 『연필로 쓰기』 – 문장을 짓는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김훈 『연필로 쓰기』 – 문장을 짓는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매일 글을 씁니다.짧게는 한 줄, 길게는 몇 페이지.책에서 마음에 남은 문장을 따라 적기도 하고,하루 동안 흔들렸던 감정을 일기처

notedays.co.kr